(계약서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가장 나중에 작성된 4번째 계약서의 효력이 인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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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이번 이야기는 2층 상가건물을 둘러싸고 4개의 상가임대차계약서가 작성되었는데 , 그 중에서 어느 것이 효력이 있느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택이나 상가를 임차하는 경우, 임대기간, 임대 면적, 차임 등을 변경해 가며 여러 차례 계약서가 작성되는 경우가 있으며 그에 따라 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에 관하여 대법원은 상식에 부합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2009. 4. 22. 피고로부터 2층 상가건물 1층과 2층 중 일부 약 60평을 임차보증금 1억 원, 월차임 600만 원, 임대차기간 2009. 4. 22.부터 5년(60개월)으로 정하여 임차하고, 커피전문점을 운영하였다.
나. 그 후 원고와 피고는 2010. 12.경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내용을 변경하면서 임차면적, 임대차기간, 월차임, 특약사항에 관하여 내용이 조금씩 다른 4개의 임대차계약서를 차례로 작성하였는데, 그중 세 번째로 작성된 임대차계약서는 세무서에 제출할 목적으로 허위로 작성한 것이다.
다. 원고는 2015. 10. 2. 피고에게 임대차계약 만기일이 도래함에 따라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내용증명우편으로 통지하였다. 피고는 2015. 11. 19. 원고에게 이 사건 임대차계약 기간은 2010. 12. 25.부터 8년(96개월)이고, 2015. 12. 26.부터 임차보증금을 2억 원으로, 월차임을 1,400만 원으로 각각 올리겠다고 내용증명우편으로 통지하였다.
라. 원고는 2015. 12. 31.부터 2016. 1. 5.까지 철거공사업자로 하여금 시설에 대한 철거공사를 마쳤다. 원고는 2016. 1. 26. 피고에게 이 사건 임차부분을 원상회복하고 인도하고자 하였지만 수령을 거절하여 열쇠를 보낸다는 내용과 함께 열쇠를 돌려주었다. 그러나 피고는 2016. 2. 4. 임대차기간이 만료되지 않았다면서 열쇠를 다시 돌려보냈다.
마. 원고는 2013. 8.경부터 이 사건 임차부분에서 약 150~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별도의 커피전문점인 을 개업하고, 현재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바. 이 사건 임차부분은 현재까지 공실로 남아있다. 2016. 1. 31.을 기준으로 원고가 피고에게 미지급한 차임은 총 4,180만 원이다.
3. 원고의 주장
원고는 가장 마지막으로 작성된 4번째 임대차계약서에 따라 임대차계약 기간은 2011. 1. 1.부터 5년(60개월)이라고 보고 임대차계약은 2015. 12. 31. 기간만료로 종료되었고, 건물도 원상회복하여 인도하였으므로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4. 피고의 반박
피고는 2번째 임대차계약서에 따라 임대차계약기간은 8년이므로 임대차계약 기간은 종료되지 않았고, 3번째, 4번째 계약서 둘다 세무서에 차임을 실제보다 적게 신고하기 위해 허위로 작성한 이면계약서에 불과하다. 따라서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고 원고가 피고에게 밀린 차임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5.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하나의 법률관계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내용을 정한 여러 개의 계약서가 순차로 작성되어 있는 경우 당사자가 그러한 계약서에 따른 법률관계나 우열관계를 명확하게 정하고 있다면 그와 같은 내용대로 효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여러 개의 계약서에 따른 법률관계 등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면 각각의 계약서에 정해져 있는 내용 중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부분에 관해서는 원칙적으로 나중에 작성된 계약서에서 정한 대로 계약 내용이 변경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즉, 여러 개의 계약서가 작성되고 그 계약서 사이의 내용이 서로 다를 경우 다음과 같은 순서로 계약서 내용의 효력을 결정하게 됩니다.
첫째, 계약서 자체에 어느 계약서 내용이 효력이 있는 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면 그에 따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계약 기간과 차임(월세)이 서로 다른 2개의 임대차계약서 A(계약기간 1년, 차임 월 100만원), 임대차계약서B(계약기간 2년, 차임 월 200만원)가 작성된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B계약서 특약 사항에 '계약 기간은 A계약서에 따른다'고 기재되어 있다면 계약기간은 1년(A계약서)이고, 차임은 200만원(B계약서)이 됩니다.
둘째, 계약서 사이에 서로 내용이 다르나, 어느 계약서를 따라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나중에 작성된 계약서에서 정한 대로 계약 내용이 결정됩니다. 위의 예에서 B계약서에 특약사항이 없다면, 계약기간과 차임 모두 B계약서에 따라 계약 기간 1년, 차임 월 100만원이 됩니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법원은 4번째 계약에 따라 계약기간은 5년이고 원고와 피고 사이의 임대차계약은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으므로 효력을 잃고 피고는 원고에게 임대차보증금 잔액 5,820만 원(임대차보증금 1억 원 -2016. 1. 31.까지의 미지급 차임 4,180만 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즉,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6. 에필로그
계약서에 그에 관한 규정이 없으면 가장 나중에 쓰여진 계약서에 따라 정하여 진다는 법리는 간단 명료하고 우리 상식에도 부합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송이 벌어지면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그 주장이 실제로 증거에 의하여 증명되는가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됩니다. 즉, 위 판례 사안에서도 피고는 3번째 뿐만 아니라 4번째 계약서 역시 탈세를 위해 허위로 작성된 계약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었습니다. 3번째 계약서가 원고와 피고가 허위로 짜고 작성된 것이라면 4번째 계약 역시 허위로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고는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였고, 그에 따라 법원은 4번째 계약서가 가장 나중에 작성된 것이라고 보고 이에 따라 계약기간을 8년이 아니라 5년으로 본 것입니다.
실제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복잡한 법리보다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이를 충분히 증명하는 것이 승소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위 사안에서도 4번째 계약서가 원`피고가 서로 짜고 작성하여 무효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면 재판의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즉, 2번째 계약서에 따라 계약기간은 8년이므로 아직 계약기간 만료가 도래하지 않았고, 계약기간의 만료를 전제사실로 한 원고의 주장을 기각하였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