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행정법규를 준수한 공사장의 소음 진동은 이웃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 것일까?(2022다210000 판결)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행정법규 상 기준은 주민의 건강 등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므로 그 기준에 형식적으로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피해 정도가 현저하게 커서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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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진동에 대한 행정법규 준수와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여부
장기간 계속되는 인근 공사장의 소음 진동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공사관계자에게 이러한 소음 진동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며 공사관계자들에게 항의를 하면, 자기들은 법을 지켰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구청에 이야기해도 비슷한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공사장 소음 진동이 심하여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에도 관련 행정법규만 준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대법원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즉, 공사장에서 발생되는 소음이나 진동이 관련 법규에서 규정한 기준을 저촉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인 피해 정도 등을 파악하여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초과한다면, 이러한 소음과 진동을 발생시킨 공사관계자가 그 손해를 배상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개요
가. 원고는 2012. 7.경부터 도시 지상 건물 3, 4층에서 앵무새를 사육ㆍ번식하여 판매하는 이 사건 판매장을 운영해 왔다.
나. 피고들은 2016. 12. 21. 이 사건 판매장 건물 바로 옆 부지에 지하 4층, 지상 15층 규모의 이 사건 건물 신축을 위한 건축허가를 받고, 2017. 1.부터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를 수행하였다.
다. 원고는 위 공사기간 중 피고들에게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ㆍ진동으로 인하여 원고가 사육하는 앵무새가 이상증세를 보이다가 폐사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항의하였고, 안양시청에도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하였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이 사건 판매장과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 현장은 상업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피고들이 「소음ㆍ진동관리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상업지역 생활소음규제기준(이하 ‘생활소음규제기준’이라 한다)인 ‘주간 70dB(A) 이하’를 준수하여 공사를 진행하였고 안양시의 행정지도에 따라 흡음형(RPP) 방음벽을 설치하기도 하였으므로,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환경피해 평가방법 및 배상액 산정기준」에서 정한 가축피해에 관한 소음기준(이하 ‘가축피해 인정기준’이라 한다)인 60dB(A) 이하로 소음을 낮추지 않았다고 하여 피고들이 참을 한도를 넘는 위법한 행위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진동으로 인근 제3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위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소음․진동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내야 할 정도(이하 ‘참을 한도’라 한다)를 넘는 것인지 여부이다(대법원 2019. 11. 28. 선고 2016다233538, 233545 판결 등 참조). 소음·진동으로 참을 한도를 넘는 피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피해의 성질 및 정도, 피해이익의 공공성, 가해행위의 태양, 가해행위의 공공성, 가해자의 방지조치 또는 손해회피의 가능성, 공법상 규제기준의 위반 여부, 토지가 있는 지역의 용도와 이용현황, 토지이용의 선후관계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소음ㆍ진동을 규제하는 행정법규는 인근 주민의 건강이나 재산, 환경을 소음·진동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정하는 소음·진동에 관한 기준을 넘는지 여부는 참을 한도를 정하는 데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5다23321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주민의 건강 등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기준이므로, 그 기준을 넘어야만 참을 한도를 넘는 위법한 침해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 기준에 형식적으로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피해의 정도가 현저하게 커서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 경우에는 위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대법원 2014. 2. 27. 선고 2009다40462 판결 등 참조).
가) 일반적으로 생활소음규제기준은 건물 신축공사 현장의 소음이 참을 한도를 넘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는 있으나 그 기준을 넘지 않았다고 하여 참을 한도를 넘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더구나 이 사건은 건물 신축공사의 소음 때문에 사육하는 앵무새가 폐사하거나 산란율이 저하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므로, 가축피해에 따른 환경 분쟁 사건에서 손해와 배상의 기준에 관하여 정하고 있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가축피해 인정기준도 생활소음규제기준 못지않게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축피해 인정기준에 의하면 가축의 폐사ㆍ유산ㆍ사산ㆍ압사ㆍ부상 등의 피해유형에 대해서는 최대소음 70dB(A)을, 성장지연ㆍ수태율 저하ㆍ산자수 감소ㆍ생산성 저하 등의 피해유형에 대해서는 평균소음 60dB(A)을 각 해당 피해와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소음으로 정하고 있고,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로 이 사건 판매장에 발생한 소음은 이러한 가축피해 인정기준에 도달하였거나 넘었다고 볼 수 있다.
나) 참을 한도를 넘는 피해가 발생하였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 용도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구체적인 이용 현황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대법원 2021. 6. 3. 선고 2016다33202, 33219 판결 등 참조). 비록 이 사건 판매장과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 현장은 모두 상업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나, 이 지역에는 상가뿐만 아니라 오피스텔 등 주거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고, 원고는 2012년경부터 이 사건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 사건 판매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왔으므로 이러한 이용 현황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다) 원고는 유역환경청장에게 이 사건 공사로 인하여 304마리의 국제적 멸종 위기종 앵무새가 폐사하였다고 신고한 바 있고 담당공무원도 이를 확인하였는데, 이는 원고가 주장하는 앵무새 사육두수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이 사건 판매장의 월별 매출액, 사료ㆍ새장 등의 연간 매입액, 앵무새 연간 매입액도 이 사건 건물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 전체적으로 감소하였다. 여기에다 관상조류는 60~70dB(A)의 소음에서는 10~20%의, 70~80dB(A)의 소음에서는 20~30%의 폐사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예측한 연구결과나 건설공사로 발생하는 불규칙하고 충격음을 동반하는 소음이 앵무새 등 조류에게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감정내용을 더하여 보면,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로 발생한 소음이 원고의 앵무새 폐사 피해에 기여한 정도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라) 이 사건 판매장은 외관상으로도 앵무새를 사육하는 곳임을 알 수 있고, 원고가 공사기간 중 피고들에게 공사현장의 소음 등으로 앵무새가 폐사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항의하고 시청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였으므로, 피고들로서는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로 이 사건 판매장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피고들은 피해 방지를 위한 조치를 제때에 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 회사가 흡음형(RPP) 방음벽을 설치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가 시작되고 6~7개월 후에 이루어진 조치여서 일반적으로 공사 초기에 소음피해가 집중되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 방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 이러한 사정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로 인하여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는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 피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로 발생한 소음이 생활소음규제 기준을 넘지 않았다는 사정을 주된 이유로 하여 섣불리 참을 한도를 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 건물 신축공사로 발생한 소음의 태양과 정도, 가축피해 인정기준을 넘는 소음이 도달하였는지, 그 소음으로 앵무새 폐사 등 피해가 발생하였는지, 그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피고들이 피해의 발생을 예상할 수 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음저감 조치를 취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심리하여 원고에게 참을 한도를 넘는 피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였어야 했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판단하였으니, 원심의 판단에는 환경소송에서 참을 한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